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트레커들의 성지인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을 위한 전초기지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에서 제일 유명한 삼봉만 당일치기로 볼 수 있지만 진정한 묘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국립공원 내의 산장에서 숙박하거나 캠핑을 하며 몇 박 몇 일동안 이동하는 트레킹을 해야 한다. 코스의 모양을 따라 4일의 일정으로 소화가 가능한 w코스와 8일이나 소요되는 o코스로 나뉜다.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지만 문제는 산장의 도미토리 숙박비가 하루에 10만원을 넘을 정도로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캠핑을 할 경우에는 가격이 반으로 줄어들지만 트레킹하는 동안 음식뿐만이 아니라 캠핑 장비도 들고 다녀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그런데도 몇 달 전부터 자리가 없어 예약을 못한다고 하니 홈페이지에서 자리가 날 때마다 간신히 예약을 해서 w트레킹 코스를 완성했다. 비율로 따지면 여행 예산의 엄청난 금액이 소요된 것이다.

정말 우연찮게도 카페에서 같은 날짜에 같은 숙소를 예약한 동행을 만나 함께하기로 했다. 트레킹을 실제로 해 보니 하루도 아니고 몇 일동안 죽어라 걷는다는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절대로 혼자서 할 만한 일이 못 된다. 정말 여기서는 같이 다닐 동행이 꼭 필요하다.

 

트레킹 짝꿍과 함께 아침 일찍 호스텔을 나서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w트레킹은 서에서 동으로 갈 수도 있고 동에서 서로 갈 수도 있는데 나는 바람을 등지고 갈 수 있는 서에서 동쪽 방향을 택했다. 이 경우에는 먼저 푸데토 선착장에서 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9시 배를 타기 위해서 6시 40분 버스를 탔는데 허망하게 배를 눈 앞에서 놓쳐 버렸다. 버스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이 바로 앞에서 걸어가고 있어서 당연히 천천히 따라 갔는데 배에 타지 못한 열댓 명의 사람을 남겨 두고 배가 떠나 버린 것이다. 눈 앞에서 배를 놓친 허망함과 어이없음에 기가 찼다. 선착장에는 아디 하소연할 직원 조차 보이지 않았다. 9시 이후에는 11시나 되어야 다음 배가 출발했다. 그렇게 2시간 여를 기다리다가 추후에 도착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탔다.

 

경치를 감상하고 싶어서 2층 자리에 앉았다. 2층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정말 아름다웠다. 경치에 푹 빠져 사진을 막 찍은 지 오래되지 않아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과 함께 갑판까지 물이 막 튀었고 사람들은 물을 피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가거나 아예 바닥에 앉기 시작했다. 다들 추위에 떨면서 부둥켜 앉은 모습도 장관이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바람에 토레스 델 파이네에 도착하자 마자 선글라스를 호수 속으로 날리셨다. 간신히 바람을 뚫고 가격 급상승으로 도달한 23000칠레 페소를 배 값으로 지불하고 첫 목적지인 파이네 그란데 선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파이네 그란데 선장에서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을 할 때 여권뿐만 아니라 칠레에 입국할 때 주는 pdi종이가 필요하니 잘 챙겨놓아야 한다.

막상 산장에 들어와보니 예약이 어렵다던 말과는 다르게 비어있는 침대가 상당히 많았다(...) 짐을 두고 그레이 빙하로 향하기 전에 점심을 먹었다. 조리를 할 수 있는 캠핑장 조리실은 불 쓰는 기구를 미리 준비해와야 하기 때문에 산장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물을 사용했다. 따뜻한 물에 누룽지를 데워 참치캔, 김과 함께 먹었다.

 

밥을 챙겨 먹고 그레이 빙하를 향해 걸었다. 그레이 빙하로 가는 길은 바람을 거스르면서 가야 했기 때문에 아주 힘들었다. 사놓고 가져갈까 말까 고민한 방한 모자가 첫날부터 이렇게 유용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간신히 바람을 뚫고 전망대까지는 도착했지만 여전히 바람이 너무 심해서 사진을 찍기도 어려웠다. 짝꿍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는 그래도 이걸 보려고 올라왔는데 하면서 거센 바람 속에서 빙하를 확실히 눈도장 찍고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금방이겠지 했는데 또 내려가다 보니 왜 이렇게 길이 안 끝나나 싶었다. 서양인은 다리가 길쭉길쭉해서 그런건지 다들 우리를 앞질러 갔다. 앞으로는 예상 소요 시간에 1.5배를 해야겠구나 싶었다. 돌아오니 그래도 아직 6시밖에 안되었는데 많이 피곤했는지 씻고 눕자마자 그냥 곧바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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