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나탈레스를 떠나 아타카마로 향하는 날이다. 아타카마를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제일 가까운 공항인 칼라마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직항이 없어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산티아고,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칼라마로 환승을 해야 한다. 저가항공사를 활용하여 미리 예약하면 저렴하긴 한데 좌석 지정부터 수하물 추가까지 하나하나 돈이 들어가고 연착이나 취소가 잦다고 하니 꼭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내가 처음 예약한 비행기는 저가항공 jetsmart였다. 시간대가 맞는 게 있는데 다구간 예약이 안되길래 푸에르토 나탈레스-산티아고 구간과 산티아고-칼라마 구간을 따로 구매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산티아고-칼라마 구간 운행 시각이 2시간 여 당겨졌다는 메일이 날라왔다. 다행히 다른 저가항공인 skyairline에 시간대가 맞는 비행기가 있길래 예매했다. 당연히 jetsmart는 환불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카드 결제했음에도 바로 카드로 환불이 안 되고 계좌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과정이 번거로웠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버스터미널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에 가는 셔틀은 없고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고작 10분 거리임에도 무려 7000칠레 페소를 주고 편하게 공항에 도착했다. 2시간 걸리는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 가는 버스랑 가격이 같았다. 엄청 작은 푸에르토 나탈레스 공항은 와이파이도 안 되고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없다는 게 충격이었다.

 

 

안전하게 2시간이나 일찍 오는 바람에 편하게 기다릴까 하는데 눈 앞에 기내에 실을 수 있는 짐 크기를 제한하는 철제 상자가 보였다. 예전에 후기에서 저 상자 위로 조금 튀어나왔다고 비싼 추가 요금을 지불하라고 했다는 글을 본 게 떠올랐다. 한 번 넣어봤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한 시간동안 가방 사이즈를 줄이느라 끙끙댔다. 힘을 너무 줬더니 설상가상으로 가방 지퍼까지 빠져서 가방이 안 잠기게 되었다. 그 가방 지퍼를 다시 끼우느라 온 에너지를 다 쓰고 나니 어느새 탑승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비행기 타는데 나 포함 누구한테도 짐 크기 갖고 뭐라고 안 했다. 허망한 순간이었다. 기내는 사람이 없고 비어있는 자리가 많았고 걱정과 달리 지연이나 연착없이 무사히 산티아고 공항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공항은 수도에 자리한 큰 공항이다 보니 매점도 있고 핸드폰을 충전할 공간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충전기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다가 보딩 타임에 늦지 않게 게이트로 향했다. 스카이 에어라인 또한 가방 크기 갖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 허망한 순간이었다. 어제는 산에서 빙하를 보고 오늘은 창 밖에 보이는 사막을 보니 참 신기했다.

칼라마 공항에서 아타카마로 가려면 칼라마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과 공항에서 바로 호텔까지 벤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칼라마 버스 터미널이 국경과 접해 있다 보니 범죄가 많다고 해서 벤을 이용하기로 한다. 인터넷에서 미리 예매하려고 보니 편도 12000칠레 페소길래 예약은 그냥 안 하고 있었는데 출구로 나가자마자 호객 행위하는 사람한테 9000칠레 페소에 이용할 수 있었다. 호스텔에 내리기 전에 시내를 통과해서 갔는데 밤 중에도 시내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짝꿍과 함께 아침을 두둑히 챙겨먹고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의 꽃인 로스 토레스를 향해 출발했다. 어제는 5시에 출발하자고 했는데 일어나서 아침먹고 치우고 짐 싸서 센트럴 산장에 맡기고 하다보니 6시 반이 넘는다. 불타는 고구마라 불리는 삼봉의 일출을 보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새벽 1시에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밤길을 뚫고 올라가기도 한다. 짝꿍과 내가 모두 일출에 큰 관심이 없는 것에 안도했다.

 

로스 토레스를 올라가는 길은 평탄하게 시작해서 약간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말이 다니는 길이라 여기도 똥이 많다. 더 올라가면 바람이 엄청나게 부는 계곡이 나오고 여기를 통과하면 칠레노 산장이 나온다. 일출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로스 토레스와 한 두시간 여 더 가까운 칠레노 산장에 묵는 것이 좋다. 칠레노 산장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부지런히 올라갔다. 마의 구간이라는 마지막 돌길이 나오기 전에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그 전까지는 가벼운 등산을 하는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었다. 아 저기부터구나 하는 돌길이 등장하자 이른 점심을 챙기면서 쉬고 다시 올라갔다. 급경사에 길이 어딘지 헷갈리는 돌길이라 힘들긴 했으나 개인적으로 피츠로이의 지옥길보다는 수월했다. 피츠로이는 사람들이 저 멀리에 있어서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안 나는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그래도 삼봉이 금방 닿을듯한 곳에 있었다. 

 

간신히 올라간 삼봉은 우와 진짜 멋있었다. 햇빛도 짱짱하니 날씨도 좋고 안개에 가려진 것도 없이 너무 삼봉이 잘 보이고 물 색깔도 너무 예뻤다. 매일매일 걸어다니는 것에 지쳐 사진 찍을 여력도 없었는데 여기에서는 짝꿍과 서로의 인생 사진을 남기기 위해 초집중했다. 사진을 찍다보니 한 시간이 가는 건 금방이었다. 예약되어 있는 버스가 있다보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수 밖에 없었다. 돌길은 역시 내려오는 길이 더 힘들었다. 내려가는 길은 왠지 금방일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다. 간신히 내려가 짐을 찾고 웰컴 센터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생맥주를 한 잔씩 했다. 엘 칼라파테을 마셔봤는데 차가 섞인 듯한 특이한 맛으로 맛있었다.

토레스 델 파이네 3박 4일 w트레킹을 마치고 보니 내가 여기를 무슨 패기로 혼자 예약을 했나 싶다. 하루에 몇 시간이고 산을 주구장창 걸어야 하는데 얘기할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혼자였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우연히 날짜에 숙소도 같은 좋은 동행이자 짝꿍을 만나게 된 게 천운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안녕!

꾸에르노스 산장에서 아침을 두둑히 먹고 짐을 챙겨 들고 로스 토레스 호스텔로 향했다. 로스 토레스에는 호텔도 있고 센트럴과 노르떼 두 개의 호스텔이 있다. 모든 짐을 들고 가는 길은 무거웠지만 꾸에르노스에서 로스 토레스로 가는 길이 경치가 참 좋았다. 이탈리아노에서 꾸에르노스로 가는 길은 해변같은 호수를 바로 옆에 끼고 갔다면 이번 길은 멀리 자리한 호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더웠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거나 빗방울이 쏟아지거나 추워졌다가 다시 더워지는 날씨 때문에 껴입었던 옷을 벗고는 다시 방한모자를 쓰거나 우비를 입곤 했는데 이번에는 날씨가 항상 좋았다는 거다. 무거운 배낭을 역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선선한 바람은 땀을 식혀 주었고 경사가 급하거나 고되지 않은 평탄한 길이라 쉬엄쉬엄 경치를 감상하기 좋았다. 또 지난번에는 브리타니코 전망대라던지 프란세스 벨리같은 중간 목적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왔던 길을 되돌아갈 필요 없이 쭉 갔던 길로만 가면 되니 마음도 후련했다. 그러나 단점을 꼽자면 길에 정말 정말 큰 똥이 많았는데 도대체 무슨 동물이길래 길에 이렇게 똥을 흘리고 다니나 했더니 말이었다. 로스 토레스나 칠레노 산장에서 짐을 운반하고 사람을 나르는 역할을 하는 듯 했다.

 

로스 토레스 산장으로 가기 전 그 앞에 있는 웰컴센터를 먼저 들려 버스 표를 샀다. 웰컴 센터에서 라구나 아마르가까지 3000페소였고, 라구나 아마르가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저녁 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삼봉이라고 부르는 로스 토레스를 이곳에서 당일치기하는 사람들이 많아 제일 북적한 느낌이었다. 특히 서양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웰컴 센터는 이미 토레스를 보고 내려와 맥주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내려가는 길에 물을 한 모금 드렸던 한국 분을 여기서 또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맥주를 한 병씩 사주셨다. 물 한 모금에 비해 너무 과한 선물을 받았다.

 

우리가 묵은 곳은 산장 중에서도 노르떼였는데 여기는 무려 전자레인지와 커피포트를 쓸 수 있음에 감사했다. 처음에 전자레인지 불이 안 들어와 약간 헤매긴 했지만 그냥 콘센트를 다른 곳에 꽂으면 되는 거였다. 짝꿍은 가져온 쌀을 어떻게든 해야 내일 로스 토레스를 올라갔다 올 수 있다며 캠핑장 부엌에서 만난 한국분께 점화기를 빌려 밥을 지으러 갔다. 짝꿍이 많이 불쌍해보였는지 은퇴하고 세계여행 중이시라는 부부는 무려 밥에 불고기까지 얹어 주셨다. 나중에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말과 함께.. 불고기는 우리가 준비한 참치캔, 소세지, 김, 밥과 함께 로스 토레스를 올라갔다 올 수 있게 해주늠 엄청난 양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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